리뷰[맛집,기타]

찐~ 해물칼국수는 ~ 이곳!! 가격에서 더 놀라고~!! 엄청난 비주얼~ [오늘한입]

오늘 생활 2020. 12. 13.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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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한입 

 

오늘은 제가 파주에 있는 

 

해물왕창손칼국수 집에 다녀왔습니다. 

 

 

 

 

 

칼국수 풍덩~~~ 

 

 

찐 손칼국수 ~ 

 

 

오징어와 낙지가 풍덩~ 

 

 

일단, 칼국수의 단어의 뜻은~  

설명

현대 국어 ‘칼국수’의 옛말 ‘칼국슈’는 17세기 문헌에서부터 나타난다. ‘칼국슈’는 ‘칼’과 ‘국슈’가 결합된 것으로 음식명 중에서 선행 요소가 재료가 아니라 “칼로 만든”과 같이 ‘수단’을 나타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현대 국어의 ‘칼’은 15세기 국어에서 ‘갏’이었는데 16세기 문헌에서부터 ‘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근대 국어 후기에 ‘ㅅ’ 뒤에서 이중모음 ‘ㅑ, ㅕ, ㅛ, ㅠ’ 등이 반모음 탈락으로 단모음화 하는 현상에 따라 ‘칼국슈’의 제3음절 ‘슈’가 ‘수’로 바뀌어 ‘칼국수’가 된다. 이 ‘칼국수’는 20세기 이후 나타나 현재까지 이어진다. [네이버사전 출처] 

 

 

 

파주에

위치하고 있는데요~ 

 

광탄면(廣灘面) 본래 광탄면 지역으로 1914년 양주군 백석면 마장리 일부가 편입되었고, 1983년 양주군 백석면 기산리와 영장리가 더 편입되었다. 이 지역에서 양주군 백석면과 광적면 양쪽에서 흘러내린 물이 문산천으로 합류하는데, 이것이 넓은 여울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한자말로 광탄(廣灘)이라 한다.
교하동(交河洞) 교하읍은 본래 고구려 천정구(泉井口)(굴화부(屈火部) 또는 어을매곶(於乙買串)이라고 하였다)인데 신라 경덕왕 때 교하부(交河部)로 바꿨으며 선성(宣城)이라고도 부른다. ‘교하’란 명칭은 읍의 서쪽에서 흐르는 한강과 북동쪽에서 흐르는 임진강이 이 지역에서 합류하여 서해로 들어가는 데서 생긴 것이다. 원래의 교하는 지금의 금촌동, 탄현면, 교하면을 포괄하는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와석면(瓦石面), 청석면(靑石面), 탄현면(炭縣面), 아동면(衙洞面) 등으로 나뉘고 193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 경기도령 제4호에 따라 와석면과 청석면 일원을 합하여 교하면이라 하였다. 읍치는 검단산 동록에서 아동면 금성리로, 다시 정사년(1797년으로 추정) 7월 지석면 후율리로 옮겼다. 2002년 4월 1일 교하읍으로 승격되었으며 신도시 조성에 따른 인구증가로 2011년 7월25일 교하읍이 4개 동(교하동, 운정1~3동)으로 전환되었다.
군내면(郡內面) 본래 장단군 지역으로 장단 읍내가 되므로 진현내면이라 하여 서상, 동하, 서하, 점희능, 원당, 방목, 정자포, 백연 등 8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폐합 때 진현내면 전부와 진북면, 중서면, 진동면의 각 일부와 개성군 동면 일부를 병합하여 군내면이라 하였다.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8호에 의하여 파주군 임진면(현 문산읍)에 편입되었다. 이 지역에 민간인이 거주하게 된 것은 1972년 4월 육군 제1사단 제대 장병 14명이 영농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1972년 12월 28일 법률 제2395호에 의해 장단면, 진동면, 진서면과 함께 파주군에 편입되었다. 1973년 3월 종합 개발에 착수하여 80여 세대가 입주하여 통일촌을 형성하게 되었다. 1979년 5월 1일 군 조례 제610호에 의하여 군내출장소가 설치되어 현재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백연리와 조산리를 포함하여 4개 면을 관할하고 있다.
금촌 1·2·3동(金村洞) 본래 교하군 아동면, 현내면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군면 폐합에 따라 교하군 아동면의 신금촌, 아동리, 금능리와 현내면의 맥금리, 검산리 지역, 지석면의 하지석리의 일부 지역, 청암면의 갈현리 일부 지역, 파주군 자곡면의 용은동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아동면이라 하였다.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6543호에 의하여 명칭 변경과 아울러 금촌읍으로 승격하였고, 1996년 3월 1일 파주군이 파주시로 승격되면서 금촌읍이 금촌1동과 2동으로 분리되었다. 금촌1동은 아동동, 야동동, 검산동, 맥금동과 이전의 금촌3,5리 지역을 포함하고 있으며, 금촌2동은 금능동과 이전 금촌1,2,4,6,8리로 구성되었다. 2011년 7월 25일 금촌1동이 금촌1동과 금촌3동으로 행정구역 변경되어 금촌3동은 아동동,금촌동의 일부와 야동동, 검산동, 맥금동을 관할하고 있다.
문산읍(文山邑) 본래 파주군의 칠정, 마정, 운천, 신속면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구면 폐합 때 마정면의 마정·장지·반장·사목의 4개 동리, 운천면의 상리·하리, 신속면의 비인·내벌·임진각 일부, 오리면의 장포리 일부를 병합하여 임진강의 이름을 따서 임진면이라 하였다.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6543호에 의하여 임진면을 문산읍으로 승격하고 월롱면의 내포리를 편입하였다. 1983년 2월 15일 대통령령 제11027호에 의하여 파평면의 이천리를 편입하였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문산(文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법원읍(法院邑) 본래 파주군 지역으로 샘재(泉峴)의 이름을 따서 천현면이라 하였는데 1895년(고종 32)에 천현내패와 천현외패 2면으로 갈랐다. 1914년 4월 1일 군면 폐합 때 천현내패·외패면과 과평면의 지천리 일부를 병합하여 천현면이라 하였다. 1989년 4월 1일 군 조례 제 1280호로 법원읍으로 명칭 변경과 함께 승격하였다. 법원읍은 법원리에서 그 명칭을 딴 것인데 법원리는 법의리(法儀里)의 '법(法)'자와 원기리(院基里)의 ' 원(院)자를 딴 것이다.
운정 1·2·3동(雲井洞) 옛날에 이곳에 샘이 잘 나는 우물 아홉 개가 있어 구우물이라 하였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지명을 묻기에 구우물이라 했더니 구름우물로 잘못 들어 생긴 이름으로 수렁논이 많고 우물이 많아 안개가 자욱하였다고 한다. 운정동은 신도시개발에 따른 인구유입으로 도시화에 부합하는 행정체계로의 전환이 요구되어 2011년 7월 25일 교하읍이 4개동으로 분동되면서 신설되었다.
월롱면(月籠面) 본래 파주군 지역으로 지살면, 자곡면이라 하여 위전·용은·덕옥·영태·순상·도내의 6개 동리를 관할하였는데, 1914년 4월 1일 군면 폐합 때 오리면의 당산·능동·내동·굴촌·장포의 일부, 백석면의 현암·오라의 각 일부, 광탄면의 두만 일부, 칠정면의 문산하리·당동리의 각 일부, 교하군 아동면의 등원·아동의 각 일부 지역 등을 병합하여 월동산의 이름을 따서 월롱면이라 하였다.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6543호에 의하여 내포리가 문산읍으로 편입되었다. 월롱산과 가까운 위전리에는 다락고개, 달앗과 같은 지명이 많고 월롱산은 다랑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월롱(月籠)의 월(月)은 우리말 다·달을 한자화한 것으로 롱(籠)은 ‘락-랑-롱’으로 발음 변화 한 것으로 추정된다. 즉, 월롱의 의미는 높은 지대를 뜻하는 ‘다락’일 것으로 보인다.
장단면(長湍面) 장단군(長湍郡)은 본래 고구려 장천현(長淺縣)인데 신라 떄 장단(長湍)으로 고쳤다. 1001년(고려 목종 4) 단주(湍州)로 승격되었고 1018년(현종 9) 다시 장단현(長湍縣)이라고 하였다. 같은 해 12월 다시 장단을 임강현에 합병하였으며 이때 명칭은 임단현(臨湍縣)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1419년(세종 1)에는 다시 장단현이 되었다. 1456년(세조 2)에는 장단, 임진현을 폐합하여 임진현에 소속시켰으며 1458년에는 임강, 임진을 합해서 장단으로 하였다. 조선조 말에는 진현내면, 진동면, 상도면, 하도면, 중서면, 진북면, 송남면, 송서면, 서도면, 동도면, 장북면, 강남면, 강서면, 강북면, 강동면, 대위면, 장동면, 장현내면, 고남면, 장서면 등을 관할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군내면, 진남면, 진서면, 소남면, 대남면, 강상면, 대강면, 장도면, 장남면, 진동면 등으로 개편하였다. 1972년 12월 28일 법률 제2395호에 의하여 군내면, 장단면, 진동면, 진서면 등이 파주군에 속하게 되었다. 지금은 대성동과 통일촌에만 사람이 살고 있다. 지금의 장단면은 본래 하도면, 상도면, 중서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진남면으로 병합되었고 1934년 장단면으로 개칭되었다.
적성면(積城面) 본래 적성현 지역으로 적성읍내였으므로 현내면이라 하여 읍내·관동·가월·검상·주월·설마 등 6개 동리를 관할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동면의 객현·백운·장평·송현·산덕·율포·어유지·적암·늘목의 9개 동리와 서면의 두지·마지·식현·도장·무건·답곡·자장·현석·장파의 9개 동리, 그리고 마전군 군내면의 8삼화리, 장단군 고남면의 장좌리, 양주군 영근면의 하원리 일부와 파주군 파평면의 천천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적성면이라 하여 연천군에 편입되었다. 이 당시의 적성면은 구읍, 가월, 주월, 설마, 객현, 율포, 늘목, 장현, 어유지, 적암, 두지, 마지, 무건, 식현, 장파, 답곡, 자장, 삼화, 장좌 등 19개 리로 구성되었다. 그후 1945년 11월 3일에는 파주군 관할이 되었으며, 1946년 2월 5일 남면이 양주군으로 분리되었다.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8호에 의하여 늘목리와 삼화리를 연천군 전곡면과 미산면에 넘겨주어 모두 17리가 되었다.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6542호에 의하여 장파리를 파평면에 넘겨주어서 16개 리가 되었다. 적성(積城)은 원래 고구려 칠중현(七重縣)으로 신라 경덕왕 떄 칠성현(七城縣)으로 개칭하고 고려 때 적성현(積城縣)으로 고쳤다.
조리읍(條里邑) 본래 파주군 지역으로 조리동면(條里洞面(助里洞面))이라 하다가 조리면으로 줄여 부르게 되었다. 1914년 4월 1일 군면 폐합에 따라 교하군 아동면의 등원리, 아동리의 일부, 지석면의 상지석리 일부와 고양군 사리대면의 설문리, 지영리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고 죽원, 뇌조, 오산, 장곡, 봉일천, 등원 등 6개 리로 개편하여 조리면이라 하였다. 이후 1989년 1월 1일 군 조례 제1251호로 능안리가 포함되어 7개 리를 관장하게 되었다. 공릉산(恭陵山) 정상에서 사면으로 뻗은 가지(條) 모양의 산줄기를 따라 골짜기마다 마을이 형성되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2002년 4월 1일 교하와 함께 읍으로 승격되었다.
진동면(津東面) 본래 진동면, 장서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진동면, 장서면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읍내 동쪽이 되므로 진동면이라 하였다. 1972년 12월 28일 법률 제2395호에 의하여 파주군에 편입되었다. 6·25전쟁 이후 주민 미거주 지역이었으나 2000년을 전후해 수복마을인 해마루촌이 조성되었다.
진서면(津西面) 본래 송림현(松林縣) 지역으로 1418년(태종 18) 임강현(臨江縣)에 편입되었고, 1458년(세조 4)에 장단군에 편입되어 송림 읍내 남쪽에 자리하고 있어 송남면(松南面)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송남면과 송서면의 일부, 진북면의 조산리 일부와 개성군 청교면, 동면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진서면이라 하였다.
탄현면(炭縣面) 본래 교하군 현내면, 신오리면, 탄포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교하군 현내면의 법흥·맥금·성동 지역과 신오리면의 성동·대동·만우·금산 지역, 탄포면의 축현·금승·낙하·문지·오금 지역, 청암면의 송촌·연다산·오도·갈현의 각 일부 지역, 파주군 오리면의 능동리 일부, 자곡면의 덕옥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탄현면이라 하여 파주군에 편입되었다. 탄현은 탄포(炭浦)의 ‘탄(炭)’자와 현내(縣內)의 ‘현(縣)’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파주읍(坡州邑) 조선시대부터 파주군 지역으로 파주읍내가 되므로 주내면이라 하여, 동부(東部)·서부(西部)·남부(南部)·북부(北部)·마산(馬山)·용지(龍池)·대조(大棗)·부곡(釜谷)의 8개 동리를 관할하였는데, 1914년 4월 1일 군면 폐합 때 백석면(白石面)의 오라(五羅)·우건(牛巾)·봉현(烽峴)·현암(絃岩)·방축(防築)·학동(學洞)·적전(赤田)의 7개 동리와 자곡면(紫谷面)의 도내리(都內理)일부, 칠정면(七井面)의 향양리(向陽理)를 병합하여, 파주·연풍·부곡·백석·봉암·봉서·향양의 7개 리로 개편하여 주내면이라 하였다. 1980년 12월 1일 대통령령 제10050호에 의하여 주내읍으로 승격되고, 1983년 2월 15일 대통령령 제11027호에 의하여 파주읍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파평면(坡平面) 본래부터 파주군 지역으로 옛날에 파평현이 있었으므로 붙은 이름이다. 조선시대 때 풍덕, 천천, 늘노, 금곡, 장포, 두문, 신사, 마사, 신곡, 이천, 지천, 용산 등 12개 동리가 이곳에 속하였는데 1914년 군면 폐합 때 칠정면의 이천리와 신속면의 임진리 각 일부 그리고 적성군 서면의 식현, 도장리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율곡, 두포, 이천, 마산, 금파, 늘노, 덕천 등 7개 리로 개편되었다. 파평면 지역은 475년(장수왕 63)경 파해평사현(坡害平史縣)이라 하였고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파평현(坡平縣)으로 개칭되었다.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6542호에 의하여 적성면의 장파리를 편입하여 8개 리가 되었고, 1983년 2월 15일 대통령령 제11027호에 의하여 이천리를 문산읍에 넘겨주어 현재 7개 리가 되었다. 파평산과 영평산의 명칭에서 연유하여 파평면으로 호칭되고 있다. 전 지역이 평평한 언덕이다.

[파주시청 홈페이지] 

 

이런 스토리가

있다고 하네요~ 

 

 

 

이제 본격적인 리뷰

시작해 보겠습니다.

 

넓은 홀과 

칸막이 설치로 

코로나 시대에 

잘 대비하는 모습이였습니다. 

 

 

 

 

대형룸도 있어서 

아이들이 있는 가정이나, 

각종 모임, 회식등

하기에 편하게 되어 있습니다. 

빨리 코로나가 끝나서 

여러 모임들 하고 싶네요~ 

 

 

한쪽에

셀프 코너 설치로~ 

추가 반찬과 

앞접시를 이용할 수 있게 

설치 되어 있구요~ 

 

홀 한 쪽에 대형 수조와

전복들이 관리 되고 있습니다.

 

너무 깨끗한 수질관리~ 

매일 매일 관리 해주신다고 

하네요~ 

 

더욱 믿음이

가는 식당 이였습니다. 

 

 

리얼 손칼국수 

주문이 들어오면 즉석에서 

바로 바로 칼로 썰어주십니다.

 

직접 반죽하시고 

썰어 주시는 모습이 

믿음이 가는 식당입니다. 

 

오픈된 곳에서~

조리과정 공개는~

자신감없으면 할 수 없지요~  

 

 

 

 

친절한

먹는 방법 설명서~ ^^ 

 

 

전 이렇게 되어 있는 

식당이 너무 좋더라고요~ 

 

 

 

 

자 보이시나요? 

 

2인분입니다. 

1인분에

12000원~ 

 

2인분부터

주문가능하구요~ 

 

전복 2, 새우 2,

오징어, 낙지등~ 

 

그리고 조개류~~ 

 

너무 다양한

해물이 준비 되어 있어서~ 

 

 

꼭! 해물탕 같습니다.

 

 

전복도 너무 크고 실한 사이즈로~ 

맛있었습니다. 

 

 

 

 

 

 

 

이렇게 앞

접시에 덜어서 먹으면~~

바로 꿀 맛이지요~ 

 

 

해물칼국수 ~

해물을 먼저 드시고~ 

 

그 다음에 ~ 이제 아까 보았던

손칼국수~ 

 

사장님 정성이

느껴지는 손칼국수~ 

 

이제 칼국수 타임

입니다. 

 

 

자~ 맛있겠지요? 

 

칼국수 하면은

바로 겉절이에~~

 

칼국수와 겉절이는

친한친구이죠~ 

 

넓은 주차장으로 

주차 쉽고 

찾기 쉽고~ 

 

[경기 파주시 시청로 95 ]

 

해물왕창손칼국수 

 

입니다. 

파주에 계시거나 파주에 

오셔서 해물칼국수 생각 나시면

한 번 들러보세요~ 

 

 

 

 

 

[업체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인 생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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